
[시시주간=양승진 논설위원] 연초에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람 앞길에 대한 길흉화복을 점치는 게 그의 직업이어서 의아해 했더니 대뜸 북한얘기를 했다. 일반인이 북한 얘기를 하는 건 거의 없는 일이어서 점쟁이가 북한 얘기를 하는 건 좀 수상쩍었다.
그는 올해 김여정이 최고지도자가 된다는 소리를 했다. 언제 어떻게 그가 최고지도자가 된다는 설명은 없고 자신은 그렇게 공수(무당의 입을 빌려 신이 인간에게 의사를 전하는 일)를 받았다만고 했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김정은이 죽어야 하고 그 전에 김여정이 대통을 잇는다는 상징적인 선언이 있어야 가능하다. 난데없이 김여정이 최고지도자가 됐다고 하면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아버지인 김일성으로부터 무려 20년간이나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김정은도 2003년부터 시작해 2005년부터는 지도자 행세를 하다 2011년에 최고지도자가 됐으니 8년 정도 수업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김정은이 건강이 악화돼 더 이상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이 돼야한다. 심장마비나 뇌혈관 질환은 언제 어느 때 갑자기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지난해 3월 김정은이 한 달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사망설에 휩싸였다. 전 세계 언론은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대서특필했다. 김여정이 대통을 잇느니 2인자니 하는 얘기가 그 즈음 나왔다. 하지만 순천린비료공장 준공식에 김정은이 나타나면서 이를 불식시켰다. 다소 다리를 절고 팔뚝에 심혈관 시술자국이 있다고 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지난해 10월 24일에는 더 기가 막힌 일이 있었다. 미국 타블로이드 매거진 ‘글로브’가 난데없이 김정은 사망설을 보도했다. 더 웃긴 건 김여정이 쿠데타를 통해 김정은을 축출했다고 했다.
김정은이 5월 6일부터 6월 5일 사이 비밀 쿠데타를 일으킨 김여정에 의해 살해됐고, 6월 이후 김정은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9월 9일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 행사 때 갑자기 등장했는데 이 때는 대역 인물”이라고 했다.
일본 도쿄신문 등 일부 외신은 “12명의 ‘가게무샤(과거 일본에서 적으로부터 군주를 보호하기 위해 닮은 사람을 대역으로 내세운 인물)’가 있다”고 보도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김정은은 지난해 9·9절 열병식과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국정연설 때 안경테가 헐렁해지고, 턱선이 날렵해지는 등 살이 빠진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러다 10월 10일 당 창건 76돌 기념강연회에서 날씬한 모습으로 등장하자 ‘신변 이상설’이 또 불거졌다.
신장 170㎝인 김정은은 청년시절 체중이 약 70kg정도였다 ‘후계자 시절’ 김일성 코스프레를 한다며 급속히 체중을 불려 90㎏으로 등장했다. 이후 매년 6~7㎏씩 살이 쪄 140㎏을 넘어섰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7월 국회정보위에서 김정은의 체중이 2019년 약 140㎏이었다가 체중을 10~20㎏ 감량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에 열린 당 중앙위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는 김정은이 뒤통수에 의료용 테이프를 붙였다 뗀 자국이 있다며 건강 이상설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전 북한 정찰총국 대좌 출신인 김국성 씨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김정은의 체중이 급격히 줄어든 것은 질병에 의한 것”이라며 “치료 목적으로 체중을 감량한 게 아니라 질병의 진행 경과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심혈관계 질병과 당뇨병 등을 앓고 있는데 최근 김정은이 야위게 된 것은 그 합병증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국명(國名)을 밝히기 어려운 나라로부터 김정은의 건강을 돌볼 목적으로 의료진이 북한에 파견돼 있다”며 “김정은이 저렇게 된 것은 김일성 코스프레 때문에 체중을 불린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연초인 지난달 11일 김여정은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이례적으로 참관했다. 조용원 당 조직비서와 함께 미사일의 비행궤적 등이 표시된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는 김정은 옆에서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지난달 28일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중요 무기체계’를 생산하는 군수공장을 현지지도 했다고 보도하면서 이날 김여정 부부장 등이 김 총비서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TV에는 김 부부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시험발사나 군수공장을 찾아 김정은을 수행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쳐도 연초부터 그를 등장시키는 건 뭔가 석연치 않은 건 분명하다. 이 모습을 보면서 점쟁이가 한 말이 불현 듯 떠올랐다. 김정은이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있어 김여정을 자꾸 등판시키는 건 아닌지 말이다.
김여정이 오는 6일 개최되는 최고인민회의에서 만약 ‘별’을 단다면 군(軍)에까지 손을 뻗치게 돼 점쟁이의 ‘최고지도자론’은 신빙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SW
ysj@economic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