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문(文)은 전쟁을, 무(武)는 평화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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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문(文)은 전쟁을, 무(武)는 평화를 부른다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2.03.03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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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https://moonchina.tistory.com/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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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월나라 왕 구천은 위장평화로 자신의 복수를 매듭지은 인물이다. 회계산에서 오나라 왕 부차에게 항복한 후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참아내며 자신의 의도를 숨겼다. 그러기를 10여 년. 마침내 오나라가 빈틈을 보이자 월나라는 가차 없이 공격해 점령했다. 위장평화가 이끌어 낸 복수극의 완성이다.

이 세상에는 평화를 사랑하는 성인들만 있는 게 아니다. 공자가 천하를 돌면서 그토록 인과 예를 주장했지만, 폭력과 몰예(沒禮)로 무장한 인간들에 의해 전쟁은 끊임이 없었다. 이 세상에는 늘 무자비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바로 지금 ‘휴브리스 증후군’(절제되지 않는 분노, 독단적 의사결정, 과대망상 등)에 걸린 것 같다는 러시아의 푸틴 같은 사람이 그런 종류의 인간 아닌가. 이런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지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자 한다. 세기의 지성이라는 니체마저도 “나는 천성적으로 호전적이다. 공격은 내 본능의 일부다”면서 자신을 비판했다. 우리는 이런 자들로부터 지키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사드 배치는 당연히 그런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억지기술(art of deterrence)은 전쟁과 인간 본성에 관해 3가지를 이야기 해준다. 첫째, 인간은 상대가 힘이 없거나 취약한 모습을 보이면 더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그들은 상대가 약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단지 상대의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신호를 보고 판단할 뿐이다. 셋째, 그들은 빠르게 그리고 대가를 치르지 않고 승리하고자 한다. 그래서 저항하지 않는 힘없는 자를 먹이로 삼는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주인공 한병태는 서울에서 시골 초등학교로 전학 가는데 거기서 왕초 노릇하는 반장 엄석대를 만난다. 그는 엄석대의 물당번을 거절하면서 그의 세력에 반항하며 저항해 본다. 하지만 반에서 왕따를 당하면서 결국 굴복하고 그의 보호를 받는 쪽을 택하게 된다. 힘이 없으면 어린아이들조차도 이런 꼴을 당하는 법이다.

히틀러의 폴란드 불가침 협정, 미국과 남·북베트남이 맺은 파리 평화협정, 가까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미국, 영국과 맺은 ‘안전보장 양해각서’ 등은 종이 조각에 불과했다. 푸틴처럼 늑대와 같은 자들 앞에서 평화를 운운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 행동은 정복을 통해 쾌감을 얻는 억압적이고 독재적인 권력에 스스로를 바치는 꼴이다.

한자 무(武)는 止(그칠 지)와 창의 모습을 본뜬 戈(창 과)가 합쳐진 회의자(會意字)이다. 창과 같은 무기로 싸움을 막아 그치게 한다는 의미이다. 전쟁이 불가피하면 어쩔 수 없이 싸우지만 싸움을 그치게 해 평화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때때로 문(文)은 전쟁을, 무(武)는 평화를 부른다. 중국 송나라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이처럼 견고한 자위력과 방어력이 있을 때에만 평화를 지킬 수 있지 ‘종전선언’ 같은 공허한 레토릭에 기댄다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육·해·공군 및 해병대 예비역 장성 1300여 명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과 함께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현 정부의 굴종적 가짜 평화쇼와 안보무능으로 군의 기강이 무너지고 안보태세가 무력화됐다”고 비판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현 정부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분들까지 나섰겠는가. 말로만 하는 평화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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