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쇠와 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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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쇠와 노환
  • 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
  • 승인 2022.07.0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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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계 거목 趙淳 교수 별세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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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조순(趙淳, Cho Soon) 전 경제부총리가 노환(老患)으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지난 6월 23일 94세로 별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은 생전에 교수와 관료,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만큼, 전·현직 대통령부터 정치 원로까지 각계 인사들이 추모의 뜻을 전달했다. 장지는 강릉 선영에 마련됐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은 우리나라 경제학계의 큰 산이었고, 정계의 큰 어른이셨다. 빈소를 찾은 여야 정치인들과 정부 관료, 학계 인사들은 고인을 ‘선생님’, ‘큰 어른’으로 기억하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전에도, 앞으로도 조순 선생님만 한 선비 학자를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며 “학문도 아주 훌륭할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특별한 감각이 있으셨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의 제자이자 저서 ‘경제학 원론’을 공저(共著)한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25일 발인까지 유가족과 함께 했다. 최근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저서 <나의 스승, 나의 인생>에서 이 시대 참스승 조순 스승과의 55년 사제의 인연에 관하여 기술했다. 두 사람은 55년간 아버지와 아들 같은 특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던 정운찬 학생을 위해 조순 교수는 아버지 역할까지 해 준 것이다. 조순 교수는 서울대 졸업 후 한국은행에 다니던 정운찬의 학문적 가능성을 알아보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도록 도와주었다, 그의 결혼을 위해 신부 부모를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정운찬은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그 가르침을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자 늘 노력해왔다”고 말한다. 

小泉 趙淳은 1928년 2월 1일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난한 집안 형편상 고향집을 떠나 당시 평양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하고 있던 숙부 조평재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평양제2중학교에 입학했다. 숙부가 1943년 3월 판사를 사직하고 변호사로 경성(서울)에서 개업함에 따라 숙부를 따라 서울로 와서 경기중학교에 편입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패전 위기에 몰린 일제가 학도 특별지원병 제도를 발표하고 징용령을 공포하자, 부친의 뜻에 따라 낙향하여 해방 때까지 한학(漢學)을 공부했다. 

1945년 8월 해방이 된 후에 경기중학교에 복학했고, 1946년 경성경제전문학교에 진학하여 1949년 국립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전문부를 졸업했다. 이후 고향 강릉농업중학교(현 강릉중앙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영어를 가르쳤다. 1950년 북한의 6·25남침전쟁 발발 후 육군에 입대하여 제9보병사단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1951년 육군사관학교로 전보되어 1957년까지 영어 전임강사로 생도들을 가르쳤다. 

육군 전역 후 30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보든 칼리지(Bowdoin College)에서 학사,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귀국하여 1968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해 1988년까지 재직했다. ‘케인즈 학파’의 일원으로서 많은 학문적 업적과 제자를 남겨 ‘조순 학파(趙淳學派)’로 일컬어질 정도의 인맥을 구축했다. 케인즈(John M. Keynes, 1883-1946)는 영국경제학의 대표자이다. 

조순 교수는 케인즈의 고전 ‘일반이론(Keynes’s General Theory)’을 교재 삼은 경제학 강독을 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 대학 경제학 강의는 수요와 공급 곡선을 그려 놓고 쌀값, 연탄값 파동을 논하는 수준이었다. 이때 조순 교수가 영어, 독어에 한시(漢詩)까지 곁들여 가며 설파한 케인즈 이론을 비롯한 현대 경제학 강의는 처음 경험하는 신세계였다. 특히 창조적 정신과 정책 구상이 사회 변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강의는 많은 학생들이 실천적 경제학의 세계에 눈뜨게 해 주었다. 

이에 젊은 학도들은 “나도 조순처럼 되고 싶다”며 너도나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66년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하여 경제학과를 졸업한 49명 중 23명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48년에 발간된 새뮤얼슨의 ‘이코노믹스(Economics)’가 세계 경제학의 바이블이라면, 한국의 경제학 교과서는 조순 교수가 1974년 초판을 낸 ‘경제학원론’이다. 새뮤얼슨(Paul A. Samuelson, 1915-2009)은 1970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이론경제학자이다. 

조순 교수가 1974년 초판을 낸 ‘경제학원론’은 조 교수의 첫 제자 정운찬(66학번, 서울대 교수)이 제2저자, 정운찬 교수의 첫 제자 전성인(78학번, 홍익대 교수)이 제3저자로, 그리고 김영식 서울대 교수 등이 차례로 개정판(改訂版) 공동 저자로 참여하면서 11판까지 나와 우리나라 대표적 경제학 교과서로 자리 잡았다. 2014년 10월 ‘경제학원론’ 발간 40주년을 맞아 제자들이 소천서사(小泉書舍) 현판이 걸린 스승님 자택에 모였다. 

고인은 육사 교관 시절 제자였던 노태우(1932-2021)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88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았다.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에 임명되었으며,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당에 입당해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1998년에는 강원 강릉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2000년 민주국민당 대표로 지휘한 16대 총선 참패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이후엔 서울대, 명지대 명예교수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등을 맡았다. 

길고 흰 눈썹은 고인의 대표적 상징이었으며, 산행(山行)을 즐긴 까닭에 ‘산신령’이라는 별명도 있다. 고인은 나라 경제를 걱정하며 평생을 보냈지만 집안 살림 키우는 데는 관심이 없어 봉천동 주택에서 25년 넘게 살았다. 자식들이 편한 곳으로 모시겠다고 하자 “내가 심고 가꾼 나무들이 이사 가지 말라고 말린다”면서 손을 내저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 학계를 떠받쳐온 큰 나무가 졌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어서 저 세상으로 떠난다. 인간에게 질병이란 넓은 의미에서 극도의 고통을 비롯해 스트레스, 사회적인 문제, 신체기관의 기능 장애와 죽음까지를 포괄한다. 질병의 종류에는 약 3만가지 정도가 있으며, 병을 일으키는 원인인자는 크게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그리로 나이로 대별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질병(disease), 질환(illness)과 병(sickness)은 구별 없이 혼용되고 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특정 단어가 선호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질병(疾病)은 생물학적 차원의 개념으로 병리학(病理學) 혹은 생리학(生理學)의 관점에서 생체내의 구조적, 기능적 변화가 의학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심신의 전체 또는 일부가 일차적 또는 계속적으로 장애를 일으켜서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질환(疾患)은 개인적, 사회심리적 차원의 개념으로 환자의 개인적인 질병 경험을 의미하며, 병(病)은 질병을 가진 개인이 나타내는 사회적 기능이상으로 정의한다. 

일반적인 노환(老患)의 증상으로 시력과 청력의 감퇴, 근력 감소, 뼈의 칼슘량 감소로 인한 골다공증(骨多孔症) 등이 있으며, 면역력(免疫力)이 떨어지게 되어 다른 질병에 걸리는 것도 보통은 노환에 포함시킨다. 인간은 이 과정을 거치다가 어느 시점에 심폐 기능이 정지하게 된다. 장기가 노화되어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의술로는 노환을 치료할 수 없지만, 꾸준한 건강관리로 노환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노환으로 별세하셨다”라는 표현을 했을 경우, 사망 진단서에는 대개 ‘급성 심장사(心臟死)’라는 진단명으로 표기된다. 노환으로 사망할 경우, 고인이 겪는 고통은 현저하게 적어 ‘마지막에 편히 가시니 다행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유족에게도 호상(護喪)으로 취급된다. 

노환은 다른 질병 없이 노화(老化)로 인해 신체 기능이 떨어져 몸이 노쇠(老衰)해 지는 증상으로 노환으로 사망하는 것은 대개 자연사(自然死)라고 한다. 사자성어로는 와석종신(臥席終身), 즉 제명을 다하고 편안히 자리에 누워서 죽음을 맞는다. 우리나라에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전체 사망자 중 노환으로 인한 사망자의 비율은 4.7-5.3%이다. 즉, 자연사할 확률은 5% 내외로 상당히 낮다. 

선진국에서 안락사(安樂死)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자연사로 평온하게 여생을 마무리 짓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 찬성 비율이 2008년과 2016년 50% 정도에서 76.3%로 높아졌다. 

윤영호 교수는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웰다잉(well-dying) 제도를 제대로 정비하지 않으면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요구가 더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존엄사)을 시행한 지 이제 겨우 4년이 지났기에 이 제도가 안착했다고 보기 어렵다. 안락사는 또 다른 문제여서 도입하기 전에 많은 논의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확대해야 한다. 

지난 2020년 한 해 암으로 사망한 8만2204명 가운데 1만8907명(23.0%)만이 호스피스(hospice) 서비스를 이용했다. 전체 사망자로 따지면 6.2%에 불과하다. 한편 미국은 전체 사망자의 51.6%가, 영국은 암 사망자의 95%가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했다. ‘호스피스·완화 의료 서비스는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 병원들이 제공하기를 꺼린다. 이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올해 호스피스 기관 지원 예산은 96억원에 불과하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학(Stanford University) 연구팀이 텔로미어(telomere)를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는 실험에 성공했다. 또한 각종 의료기관에서 노화 방지, 회춘(回春)의 기술에 관한 연구가 진행 되고 있다. 2020년대 기준으로 노화로 인한 자연사 자체가 언젠가 극복 가능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는 대답이 많다. 여러 고무적인 성과가 나오면 수십년 내에 노화 정지, 혹은 역행 기술의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도 늘고 있는 추세다. 

한편 일본에서는 ‘체력과 정신력이 있을 때 인생 마무리를 스스로 준비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성찰, 고민이 일본 사회에 더욱 깊게 퍼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서점가에선 ‘일본인, 어떻게 죽어야 하나’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함’ 등 고령자들이 스스로 임종을 고찰하는 책들이 인기가 있다. 

일본 도쿄의 도시마(豊島)구청은 지난 4월 ‘슈카쓰(終活) 정보 등록’을 위한 창구를 개설했다. ‘슈카쓰’란 고령자가 직접 인생 말년과 임종을 준비하는 행동 일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인들의 통상적인 슈카쓰는 자산 내역과 상속·처분 방식, 희망하는 장례 절차, 간병·연명의료·유언장 관련 정보 등을 한 곳에 적어두고 이를 공유하는 게 기본이다. 도시마구에 사는 65세 이상 노인이면 누구나 구청에 미리 등록할 수 있다. 

‘집 정리’도 핵심 중 하나로서 쓰지 않는 가구·옷 등의 물품을 최대한 정리해 남은 사람의 유품 정리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일본 최대 중고 거래 앱 ‘메루카리’는 이 같은 고령층 슈카쓰를 위해 메루카리 사용법 강좌를 매달 무료로 개최하고 있다. 최근 슈카쓰가 “가족·주변인들에게 죽어서도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데 너무 집중돼 있어, 임종을 앞둔 노인 당사자의 기분은 배려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도시마구청은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뒷일을 처리해 줄 분의 연락처 등을 미리 알려주시면 구청이 정보를 보관해드립니다. 그날이 닥쳤을 때, 배우자나 자녀가 없어도 본인이 원했던 대로 처리되도록 하겠습니다.”고 한다. 유명인이나 주변 지인들의 갑작스러운 임종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집에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의 임종’을 고민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나는 그 말을 모른다. 죽음이 죽는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지난 2월 별세한 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육필(肉筆) 원고 ‘눈물 한 방울’의 마지막 말이다. SW

pmy@sisa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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