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역무원의 죽음, 법조계와 정치권을 꾸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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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역무원의 죽음, 법조계와 정치권을 꾸짖다
  • 황채원 기자
  • 승인 2022.09.1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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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포스트잇으로 뒤덮힌 신당역 화장실 벽. (사진=뉴시스)
추모의 포스트잇으로 뒤덮힌 신당역 화장실 벽. 사진=뉴시스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지난 14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이 3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역무원이 근무 중인 신당역에서 대기하다가 순찰에 나선 역무원에게 범행을 저질렀고 역무원은 마지막까지 화장실 비상벨을 통해 위험을 알려 가해자가 현장에서 바로 잡힐 수 있도록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직장 동료였지만 피해자는 살해 이전에도 3년간 불법촬영, 협박, 스토킹 피해를 당했고 지난해 10월 고소를 했지만 법원은 경찰의 구속영장에 대해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고 '피하재가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신변보호조치도 중단했다. 피해자는 올 1월에도 고소를 했지만 이번엔 아예 구속영장조차 신청하지 않았다.

이후 가해자는 지난 2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촬영물 등 이용 강요) 혐의로 기소됐으며, 지난 6월에도 카메라 등 이용 촬영물 소지 등 혐의로 추가기소되어 선고가 예정됐던 상황이었다.

스토킹 보복 살인으로 이 사건이 결론내려지면서 신당역에는 추모 공간이 생겨났고 여성계를 중심으로 분노의 목소리가 표출됐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6일 논평에서 "국가는 또다시 피해자의 생명을 지키는 것조차 실패했다. 얼마나 더 많은 여성이 죽어야하는가.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당시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여성들의 절망이 2022년 똑같은 이유로 '국가가 죽였다'는 문장으로 되풀이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지속성, 반복성을 가지고 있는 스토킹 범죄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사법부를 규탄하며, 보복범죄 방지와 범죄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속제도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피해자의 요청이 없어 보호하지 못했다고 하는 경찰의 안일한 태도가 근본적인 문제이며 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누구인지 몰라 보호하지 못했다는 서울교통공사의 처사도 규탄한다. 수년 간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협박하고 살해한 살인자에 대한 신상을 공개하고 강력한 처벌을 촉구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국민적인 분노에도 불구하고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16일 신당역에서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 젠더 갈등으로 보는 부분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다양한 원인이 있다"며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발언을 했고 이상훈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좋아하는 데 안 받아주니까 폭력적인 대응을 한 것 같다. 교통공사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을 서울시민 청년인데 너무 안타깝다"며 가해자를 두둔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15일 사건 현장을 방문해 "국가가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며 처벌 강화를 약속했지만 처벌의 강화가 도리어 가해자의 무죄 판결을 더 높일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성계에서는 스토킹에 대한 강력한 처벌도 물론 필요하지만 피해자 보호조치를 강화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사건도 국가가 피해자의 신변을 보호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이유다. 합의를 감경의 사유로 인정하고 보호 조치를 푸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스토킹 살인 등 여성들의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피해를 국가에 알렸지만 보호나 해결을 전혀 받지 못했고 서울교통공사로부터도 조치를 받지 못해 끝내 가해자에게 살해당한 역무원. 그러나 그는 마지막까지도 다른 이들의 안전을 위해 비상벨을 눌렀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여성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고 심지어 안전을 지키는 이들까지 위험에 방치된 현실을 보여준 이 사건은 여전히 성범죄에 너그럽고 사건이 터져야만 '강력 처벌'을 외치고 사라지는 법조계와 정치권, 여전히 '남녀 문제'로 가볍게 생각하는 일각의 편견에 대해 큰 꾸짖음을 주고 있다. SW

hcw@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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