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퀸(Goodbye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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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퀸(Goodbye Queen)
  • 박명윤 논설위원
  • 승인 2022.09.27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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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마지막 길
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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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지난해 4월 남편 필립공의 사망 이후 쇠약해진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해 1월 병원에 하루 입원했고, 이후 외부 활동을 자제해 왔다. 9월 8일 영국 BBC 방송이 여왕의 건강 상태가 악화해 주치의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버킹엄궁은 성명을 통해 “오늘 오전 주치의들이 진찰한 결과, 여왕의 건강 상태가 우려된다”면서 “주치의들은 여왕에 대해 의료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고 발표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Her Majesty The Queen Elizabeth II)이 지난 9월 8일 향년 96세에 서거(逝去)했다. 영국 여왕 장례식 미사가 19일 오전 11시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서 국빈(國賓)급 인사 500여 명 등 총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되었다. 우리나라 윤석열 대통령 부부도 국빈으로 참석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하고, 결혼하고, 장례식을 치른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역사를 700년 동안 지켜본 곳이다. 

윤 대통령은 여왕을 애도하는 조문록(弔問錄)을 작성했다.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님의 명복을 빌며 영국 왕실과 국민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자유와 평화 수호를 위해 힘써 오신 여왕님과 동시대에 시간을 공유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님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2022년 9월 19일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이라고 썼다. 

여왕이 지난 1999년 4월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했을 당시 방문한 경상북도 안동시는 하회마을의 서애(西厓) 류성룡 고택 충효당 앞에 여왕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하회마을 주민 김종흥(67)씨는 “여왕 방문 당시 여왕에게 생일 축하주를 올리고 건배 제의를 한 인연이 있다”며 “당시 여왕의 따뜻하고 인자한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장례는 국장(國葬)으로 치러졌으며, 영국 군주 중 가장 오랜 70년을 재위하는 동안 영연방(Commonwealth)의 상징이자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한 여왕을 기리는 의미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장례식을 끝으로 영면에 들었다. 영국 국장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총리 서거 이후 57년 만에 엄수됐다. 영국 언론 매체들은 전 세계 약 40억명이 여왕의 장례식을 지켜본 것으로 추정했다. 

장례식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데이비드 호일 사제가 집전했고,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의 설교, 트러스 총리의 성경 봉독이 이어졌다. 영국 국교(國敎) 성공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여왕은 1953년 대관식에서 저 제단 위에 올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 삶을 살 것을 맹세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며 “섬김의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이는 많지만, 이를 지키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고 말했다. 여왕의 헌신을 상기하며 “권력에 집착하는 많은 사람들은 잊히겠지만, 여왕은 오랫동안 사랑받고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장례식을 마칠 무렵, 여왕에 대한 감사와 존경, 평온한 안식에의 기원이 담긴 묵념이 영국 전역에서 진행됐다. 장례식이 끝나고 여왕의 관은 버킹엄궁과 웰링턴 아치를 천천히 지나갔다. 여왕이 런던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중엔 런던을 상징하는 빅벤(Big Ben) 시계탑이 1분에 한 번씩 추모(追慕)종을 울렸다. 장례의 마지막 행선지는 런던 템즈강(River Thames) 주변에 위치한 윈저성(Windsor Castle)이었다. 윈저성은 영국 왕실의 공식 주거지이다. 

윈저성 내 왕실 성당인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서 왕실 가족들이 참석한 예식이 진행됐다. 찰스 3세는 근위대의 기(旗)를, 여왕의 의전장은 부러뜨린 지팡이를 여왕의 관 위에 차례로 올렸다. 이는 여왕에 대한 왕실 직원들의 복무가 끝났음을 알리는 의식이자, 여왕이 왕관의 무게를 내려놓음을 선포하는 뜻이 담겨 있다. 

여왕의 시신은 원저성의 석조 별관인 조지 6세 기념 예배당에 안장됐다. 73년간 부부로 함께하다 지난해 4월 99세로 별세한 필립 공(His Royal Highness The Prince Philip, Duke of Edinburgh)의 관은 왕실 금고에 보관돼 있다가 여왕과 함께 묻혔다. 예배당에는 1820년 영면한 조지 3세 이후 대부분의 영국 왕족들이 안장돼 있는 곳이며, 여왕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동생 마거릿 공주도 안장돼 있다. 

요즘 우리는 ‘100세 시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100세까지 건강하게 생존하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 여왕은 향년 96세에 서거했으며, 부군인 필립 공(Philip Mountbatten, Prince Philip, Duke of Edinburgh)도 100번째 생일을 약 2개월 앞둔 2021년 4월 9일 향년 99세에 타계했다. 

영국 세필드대학교(Sheffield University)에서 문화이론 박사학위를 받은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화)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스코틀랜드에서 별세한 것과 운구행렬, 장례식 등이 오래전부터 기획된 작품이라고 지난 9월 14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여왕 사후와 영연방국가들의 독립 요구를 예감해 왕의 위세를 보여 주려는 의도란 해석이다. 여왕의 장례식은 1960년대 초에 이미 모든 계획이 수립되었고, 매년 두세 차례씩 실제 점검을 했다고 한다. 

여왕이 죽음을 맞을 장소로 스코틀랜드를 택한 건 영연방 국가들의 독립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한편 웨일즈(Wales),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잉글랜드(England), 스코틀랜드(Scotland)가 한 몸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공식 국명은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며, 일반적으로 영국 연합왕국(United Kingdom) 또는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ain)으로 불린다. 

여왕이 사망 이틀 전인 9월 6일에 엘리자베스 트러스(Elizabeth Truss, Liz Truss) 영국 집권 보수당의 신임 당 대표 및 차기 총리 내정자가 스코틀랜드 밸모럴성(Balmoral Castle, 영국 왕실의 여름 별장)을 예방해 여왕을 알현했으며, 여왕이 트러스 총리(제78대 영국 총리)에게 임명장을 준 것에 대해 이 교수는 “그것이 핵심”이라며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사망 가능성을 전혀 안 보여줘야 된다. 그것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너무 잘했다”고 감탄했다. 

이 교수는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가 예방했을 때 여왕은 분명 사경(死境)을 헤맸을 것”이라며 “사진을 보면 여왕 손등에 멍이 들어 있었다. 이는 어마어마한 약을 투약하고 있었다는 예기다. 그런데도 아주 꿋꿋하게 행동을 했다는 건 이분이 보통이 아니다”라는 증거하며 정말 대단한 여왕이었다고 거듭 놀라워했다. 

영국 왕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왕가로 엘리자베스 여왕도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II, 1939-1945)에 영국군에 자원해서 차량 정비공으로 복무했고, 여왕의 둘째 아들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Falkland Islands War, 1982) 중 위험한 임무(해군 구조 헬기 조종사)에 자원해서 나갔다. 손자 중에서는 둘째 손자인 해리 왕자가 아프가니스탄에 나가 있는 영국군 전투부대 보병 소대장으로 일선에서 직접 싸웠다. 

“런던교(橋)가 무너졌다(London Bridge Is Down).”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를 의미하는 비밀문구이다. ‘런던 브리지’로 명명된 비밀 작전은 국왕 서거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막고 왕위를 순탄하게 승계하는 것이 목적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城)에서 서거하면서, 런던으로 향하는 이동 절차 등이 포함된 새로운 작전명이 필요했는데 이 암호명이 ‘유니콘 작전(Operation Unicorn)이다. 

군주의 사망에 대한 암호명은 1952년 조지 6세 국왕이 서거했을 때부터 사용했다. 당시 암호명은 ’하이드 파크 코너(Hyde Park Corner)‘이었다. 조지 6세의 왕비이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인 왕대비(王大妃)의 암호명은 ’테이 브리지 작전(Operation Tay Bridge)’이었다. 작년 별세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 필립 공의 비밀 작전명은 ‘포스 브리지 작전(Operation Forth Bridge)’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棺)이 19일 윈저성을 향할 때 운구(運柩)하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6명인 것에 비해 군인 8명이 짊어진 이유는 관 안쪽이 납(鑞)으로 연결돼 무게가 무거웠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납을 사용하는 전통은 몇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을 떠난 군주들의 시신을 최대한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관에 있는 납은 습기를 막아 시신을 더 오래 보존하게 해주고 시신에서 나오는 냄새나 독소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은 데 도움을 준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고고학연구소의 마이크 피어슨 교수는 관에 납을 사용하는 것은 오래된 왕실 전통이라고 말했다. 1307년에 사망한 에드워드 1세의 방부(防腐) 처리된 시체는 대리석 석관에 매우 잘 보존된 상태로 1774년에 발견됐다. 피어슨 교수는 납을 사용하는 관습은 에드워드 1세가 사망했을 때 또는 그다음 세기에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왕족 시신 보존 수단은 고대 이집트 고위층에서 사용되었던 방법을 연상시킨다. 

고대 부유한 이집트인들은 보석, 조각품 등을 포함한 소지품 은닉처와 함께 묻혔던 반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곁에는 웨일스의 금으로 만든 결혼반지와 진주 귀걸이 한 쌍 밖에 없었다. 이는 검소함과 소박함으로 알려진 여왕이 그녀의 선조들보다도 더 적은 소지품과 함께 묻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 3000개의 다이아몬드와 수십 개의 다른 보석으로 만들어진 엘리자베스 여왕의 보주(寶珠), 홀(笏), 왕관(王冠)은 그녀의 관 위에 놓여있었다가 그녀의 장례식 제단에 놓였다. 

근대 영국의 형성은 1707년 5월 1일 제정된 연합법(Union with England Act)에서 기인한다. 1707년 웨일스 지역을 포함한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의 연합을 통해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Kingdom of Breat Britain)이 되었고, 1801년에는 연합법을 제정한 후 아일랜드 왕국과 연합하여 영토를 넓히게 되었다. 이후 1921년 영국-아일랜드 조약(Anglo-Irish Treaty)를 통해 아일랜드는 공화국으로 분리되었고, 북쪽 지역인 북아일랜드만이 영국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영국의 국명인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1927년에 채택되었다. 

행정구역은 잉글랜드(England, 主都 런던), 스코틀랜드(Scotland, 에든버러), 웨일스(Wales, 카디프),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벨파스트)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구성되어 있으며, 잉글랜드를 제외하고 각각 그들만의 분권화된 위임정부(devolved government)를 가지고 있다. 또한 영국 정부가 총독(Governor)을 통해 국방과 외교 및 치안 업무를 책임지는 14개의 영국령(British Overseas Territories)과 영국 왕실이 자치 소유한 3개의 섬(Crown Dependencies)이 영토에 포함된다. 

영국은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를 시행하는 의회민주주의 국가이며, 전 세계에서 의원내각제(議員內閣制)가 처음으로 시행된 나라이다. 국왕은 상징적·외교적 기능만 가지고 있으나, 국왕은 국가의 원수(Head of State)로서 강력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총리는 행정부 수반으로 활동하며 국가업무 전반을 담당한다. 영국은 국제무대에서 G7, G20,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세계무역기구(WTO) 등 주요 국제기구의 중요한 회원국이다. 

특히 영국은 1950년 6·25남침전쟁 당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5만6000여명의 전투부대를 파병하여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준 고마운 나라이다. 영국군은 4,909명의 인명피해(전사, 부상 등)를 입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에 참석한 후 한 호텔에서 빅터 스위프트(88) 한국전 참전용사협회 회장에게 국민포장 증서를 수여하고, 오른쪽 가슴에 메달을 달아준 후 꽃다발을 전했다. 그리고 대통령 손목시계, 홍삼세트, 광주요 그릇을 선물했다. 

윤 대통령은 “영국을 방문해 6·25 참전용사 회장을 맡은 빅터 스위프트 선생님에게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해 감사의 훈포장을 드리게 돼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우리를 성장과 번영으로 이끈 자유시장 경제는 스위프트 선생님같이 10대의 나이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국민의 자유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준 덕택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베레모를 쓴 스위프트 회장은 “정말 감동하고 놀랐다”며 “대통령과 이 모든 분에게 다른 영국인 참전용사를 대신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스위프트 회장은 1934년생으로 당시 영국 육군 왕립 전자기계 공병군단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여러 전투에서 사투를 벌인 인물이다. 윤 대통령은 스위프트 회장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을 떠날 때 90도로 고개 숙여 배웅했다. SW

pm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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