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유해, 소나무 관 안치 후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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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유해, 소나무 관 안치 후 장례"
  • 황영화 기자
  • 승인 2022.10.2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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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안 의사 순국 당시 중국 현지 신문 기사 최초 발굴·공개
안중근 의사(1962, 대한민국장). 사진=독립기념관
안중근 의사(1962, 대한민국장). 사진=독립기념관

[시사주간=황영화 기자]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하얼빈산(産) 소나무로 만든 관에 안치됐다는 순국 당시의 중국 현지 신문 기사가 26일 공개됐다.

국가보훈처는 안중근 의사 의거 113주년을 맞은 이날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직후 중국 현지에서 보도된 안 의사 유해에 관한 기사와 안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의 사회장 거행에 관한 기사를 처음으로 발굴해 공개했다.

해당 자료는 보훈처와 주상하이총영사관이 독립유공자 발굴·포상에 필요한 입증자료 수집을 위해 1년여간 공동으로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발행된 신문 및 간행물 88종'중 독립운동 관련 기사 3만3000여 매를 발췌 후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굴됐다.

첫 번째는 중국 만주지역 발행신문인 '성경시보(盛京時報)'에서 안중근 의사의 순국(1910.3.26.) 나흘 후인 1910년 3월 30일에 보도한 기사로, 안 의사의 둘째 동생인 안정근 지사가 안 의사의 유해를 한국에 옮겨 매장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나, 일본당국이 거부한 사실과 당시의 정황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당시 안 지사의 요청에 대해 일본당국은 "유해는 다른 사형수와 동일하게 감옥이 관리하는 사형수 공동묘지에 매장될 것"이라고 답했는데 이는 안 의사의 유해가 당시 여순감옥 내 공동묘지에 매장됐을 것이라는 유력한 가설을 한 번 더 뒷받침해준다.

특히 안 의사의 유해가 하얼빈 소나무로 제작된 관에 안치됐다는 내용은 물론, 그간 안 의사 유해의 행방을 형무소 관계자의 회고록, 일본 정보보고서를 통해 추정해 오다 이번에 처음으로 여순감옥이 위치한 중국 만주 현지에서 당시에 이를 보도한 기사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보훈처는 특기했다.

오영섭 박사는 "안 의사의 관을 하얼빈산 소나무로 제작했다는 내용은 처음 밝혀진 귀중한 사실"이라며 "안 의사의 유해 찾기에 있어서 작지만 유익한 단서를 얻은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안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의 생전 독립운동 활동과 사회장 거행을 다룬 중국 상해 발행신문인 '민국일보(民國日報)'의 1927년 7월 19일자 기사도 찾아냈다.

1910년 안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순국할 당시 조마리아 여사는 이에 분노해 두 아들인 정근과 공근을 이끌고 러시아로 이주하여 애국 사업에 매진했다. 이후 1919년 한국에서 3·1 운동이 발발하자 다시 두 아들과 함께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또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상해 한인교민단 교민장으로 알려졌던 조마리아 여사의 장례식이 그보다 높은 예우인 사회장으로 치러졌다는 점이 새롭게 확인됐다.

박민식 처장은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해 중국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고, 정확한 매장지 파악을 위해 관련국 주요 문서보관소 등에 대한 조사도 병행 추진하고 있다"며 "이번 안중근 의사의 순국 관련 기사와 관련 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함으로써,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이 하루라도 더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훈처는 이번 분석을 통해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추측되는 인물 2000여 명을 확인, 이 중 미포상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을 추진할 계획이다. SW

hy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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