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재 정황 드러난 '이태원 참사', 책임규명 더 절실해졌다 
상태바
[기자수첩] 인재 정황 드러난 '이태원 참사', 책임규명 더 절실해졌다 
  • 이보배 기자
  • 승인 2022.11.03 07:20
  • 댓글 0
  • 트위터 385,67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입구에서 진보학생넷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입구에서 진보학생넷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이보배 기자] 지난달 29일 156명의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관련, 부실 대응 등 인재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책임규명이 더 절실해졌다. 

경찰은 이날 밤 첫 압사자가 나오기 전까지 4시간가량 시민들로부터 11건의 신고를 받았지만 현장 출동으로 이어진 것은 초반 4건에 불과했고, 이조차 현장통제 조치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태원 참사 상황을 치안 총수인 윤희근 경찰청장이 가장 늦게 보고받은 사실도 충격적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참사가 발생한 지 거의 2시간이 지난 뒤인 지난달 30일 오전 0시14분 경찰청 상황1담당관에게 참사 발생 사실을 최초로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압사 참사가 시작된 전날 오후 10시15분에서 1시간59분이 지난 뒤다. 

이 시각에는 이미 이태원에서 수십 명이 심정지 상태라는 언론보도가 쏟아지고 있었다. 

윤 청장의 사고 인지 시점은 상관인 이상민 행정자치부 장관(29일 오후 11시20분)보다 54분 늦고, 윤석열 대통령(29일 오후 11시1분)보다는 1시간13분 뒤다. 

윤 청장의 대응 지시가 늦어졌고, 그 결과 경찰이 사고에 더디게 대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 지휘체계가 작동하지 않아 국가 안전재난시스템에 구멍이 뚫려있었던 셈이다. 

경찰청이 공개한 이태원 참사 이전 112 신고 녹취록을 보면 의문은 더욱 커진다. 참사 직전 사고의 위험성을 알리는 11건의 신고에서 '압사'라는 단어가 9번이나 언급됐지만, 제대로 된 대응은 이어지지 않았다. 

의문이 커지자 경찰은 대규모 특별수사본부를 가동해 대대적인 감찰 및 내부 조사에 착수했다. 특수본은 본부장이 상급자의 지휘 및 감독을 받지 않는 독립기구로, 실무자부터 지휘관까지 관계자 전원이 조사 대상이다. 

501명이 투입된 특수본은 지난 2일 서울경찰청·용산경찰서·용산구청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본격 수사에 나섰다. 진상 조사의 핵심은 앞서 말한 것처럼 참사 전 112 신고에 대한 대응과 보고 지연에 둬야 할 것이다. 

이번 참사와 관련 정부는 '선(先) 수습'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선 수습에 이어 특수본의 감찰, 수사 결과에 따라 '후(後) 책임'이 따라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직접적 지휘 책임자인 윤 청장은 참사 상황을 사전에 대비하지 못하고, 상황 보고가 늦어지게 조직을 운영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사고 직후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직무상 져야 할 책임이 무겁다. 

국민의힘 소속 박희영 용산구청장 역시 '이태원에 인파가 몰린 건 주최자가 없으니 축제가 아닌 하나의 현상',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했다' 등의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국민적 분노를 키웠다.

국민들의 '분노'가 커진 상황에서 '치안 담당 인원을 많이 투입했더라도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던 한덕수 총리는 이태원 참사 관련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웃으며 농담을 했다가 사과하기도 했다. 

이번 참사는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할 공직자들이 그 역할을, 임무를 다 하지 못해 발생한 인재다. 

특수본의 객관적이고 철저한 수사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관련 공직자들의 책임 있는 모습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에게 뒤늦게 나마 사과하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번 참사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김의곤 시인의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라는 시로 갈음하고자 한다. SW

lbb@economicpost.co.kr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
                                                  김의진
이태원 173-7
그 좁은 골목길에
꽃조차도 놓지마라
꽃들 포개지도 마라
겹겹이 눌러오는 공포 속에서
뒤로…뒤로…뒤로…
꺼져가는 의식으로 붙들고 있었을
너의 마지막 절규에
꽃잎 한 장도 무거울 것 같아
차마 꽃조차도 미안하구나
얼마나 무서웠겠니 그 밤
얼마나 원통했겠니 그 순간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을 두고
마지막까지 안간힘으로 버티며
살갗을 파고들었을 네 손톱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구나
304명 생때같은 아이들
하늘의 별로 떠나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너희들을 허망한 죽음으로 내몬
어른들의 안일과 무책임이 부끄러워
이젠 슬픔조차도 변명마저도 차마
드러내 보일 수가 없구나
그 골목에 아무것도 놓지마라!
허울 좋은 애도의 꽃도 놓지마라!
안전도 생명도 탐욕이 덮어버린 이 나라에
반성 없는 어른들 끝없이 원망케 하라!
그리하여 아이들아 용서하지 마라!
참담한 부끄러움에 울고 있는 우리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