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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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 양승진 논설위원
  • 승인 2023.01.0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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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초. 청진농업대학에 다니는 한 학생은 역전 기다림칸(대기석)에서 여자친구와 통화를 했다. 여느 때처럼 자기도 모르게 ‘자기야’라고 호칭했다. 잠복근무를 하던 현장 단속요원은 남한식 말투를 썼다는 이유로 그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에 동조한 청진농업대학 학생 3명은 같은 이유로 끌려갔다. 학교는 남조선 말투로 전화통화를 했다고 퇴학처분을 내렸고, 그들은 가장 힘들다는 온성탄광으로 강제 배치됐다.

#2018년 9월 18일 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5월1일 경기장에 들어섰다. 상기된 표정의 문 대통령은 15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와 함께 이 담대한 여정을 결단하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며 7분 동안 연설했다.

[시사주간=양승진 논설위원] 북한은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고 남한식으로 말하고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면 노동단련형 또는 최대 2년의 노동교화형을 내리고 있다. 손전화 통보문(메시지)에서 괴뢰말투를 사용해도 마찬가지다.

또 남한, 미국, 일본영화 1편을 보다가 걸리면 5년 징역형, (드라마)10부작으로 된 연속극 1개를 보면 영화 10개를 본 것으로 취급해 무기징역형에 처한다고 선포했다. 불법영화를 10개 이상 보았을 때, 남조선 영화나 드라마를 메모리(USB)로 유포했을 때, 5명이상 모여서 함께 시청했을 때는 무조건 무기징역이고 총살형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한·미·일의 군사연습보다 더 무서운 게 ‘청년’이다. 이들은 그 어려웠다는 고난의 행군을 아예 모르는 세대다. 적당히 위협하고 공포정치를 일삼는다고 해도 단속되지 않는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월 5일 극초음속미사일 발사를 시작으로 1년 내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8발 등 최소 33차례에 걸쳐 70여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급기야 2022년 마지막 날에도 미사일을 쐈고, 2023년 1월 1일에도 미사일을 쐈다.

지난해 말 열린 600㎜ 초대형 방사포 증정식에서는 “남조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전술핵 탑재까지 가능하다”면서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김 위원장이 무언가에 쫓기듯이 대남 주적 선언과 남조선 전역 전술핵 사정권화, 핵탄 기하급수적 증산 지시 등으로 한반도를 긴장시키고 있다.

물론 김 위원장이 전원회의 확대회의 보고에서 “북남관계의 현 상황과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엄중히 위협하는 외부적 도전들에 대한 분석에 기초하여 자위적 국방력 강화에 박차를 가할 데 대한 중대한 정책적 결단이 천명됐다”고 했지만 국방력 강화 측면보다도 내부적 문제들에 함몰돼 대중의 이목을 이쪽으로 돌리는 모양새다.

집권 12년 차를 맞으면서 경제문제 특히 식량난은 물론 먹고 사는 문제에서 이렇다 할 실적이 없으니 본인도 답답할 듯하다. 외형적인 주택, 농장건설 등에 매달리면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보장을 못해 내부에서 쫓기는 형국이니 ‘핵’ ‘국방력’에 집착하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젊은 청년을 중심으로 내부에서 동요가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청년’이 곧 노이로제다. ‘총살형’등 극단적인 처방을 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치유책이 없고 보면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문재인 대통령을 5월1일 경기장에 세우고 연설까지 하게 하면서 남한말투를 쓰면 안 된다는 이 아이러니가 곧 현실의 북한이다. 내부적 통제 상황을 ‘핵’으로 승화시킨 지도력이 참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언제까지 오줌만 누고 있을 수만은 없다.

청년 말투가 꼭 북한스러워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SW

jed0815@econom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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