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징용 배상금 대납 '제3자 변제'···피해자가 싫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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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징용 배상금 대납 '제3자 변제'···피해자가 싫다면?
  • 박지윤 기자
  • 승인 2023.03.0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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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상 '제3자 변제'···"당사자 허용 없이 불가"
양금덕 할머니 "동냥해서 안 받아" 수용 거부
제3자 변제 두고 법정다툼 피하기 어려울 듯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93) 할머니가 지난 6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광주전남역사정의평화행동의 기자회견에 참여해 정부가 내놓은 일제강제징용 피해배상 관련 해법인 '제3자 대위 변제안'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93) 할머니가 지난 6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광주전남역사정의평화행동의 기자회견에 참여해 정부가 내놓은 일제강제징용 피해배상 관련 해법인 '제3자 대위 변제안'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박지윤 기자] 우리 정부가 설립한 재단이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금을 대신 지급하겠다는 정부안이 발표됐다.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제3자'가 대신 갚아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 법적 다툼이 예상된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외교부의 강제징용 해결안에 대해 피해자 측은 반발하고 있다. 양금덕 할머니는 정부안 발표 직후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동냥해서 (주는 것처럼 하는 배상금은) 안 받으련다"고 말했다. 사실상 제3자 변제 방식은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대리인단과 지원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도 "전범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재단을 설립해 대법원에서 승소가 확정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과 지연이자를 모두 지급하겠다는 취지의 계획을 발표했다. 계류 중인 소송도 확정되면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기금은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확보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후원금을 내면, 이를 종합해 재단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대법원에서 확정된 손해배상금과 지연이자는 총 4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2018년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3건을 원고 일부 승소로 확정했다. 양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 일부는 확정 판결을 근거로 압류자산 매각 명령을 신청했다. 강제로 자산을 매각해 손해를 배상받겠다는 절차다.

하급심 법원들은 일본 기업들의 국내 자산을 매각해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일본 기업들이 대법원에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청해 현재 재항고심(3심)이 진행 중이다. 대법원은 2건이 계류 중이며, 계속 심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는 정부안 발표가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자산 매각 재항고심 사건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시도라는 시각이 있다. 대법원에서 자산 매각을 확정하기 전에, 정부가 대신 갚아주는 방안을 마련해 마찰을 피하려고 한다는 비판이다.

정부는 양 할머니 등 피해자를 설득해 재단이 마련한 손해배상금 지급을 수용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부 측은 양 할머니 등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법원에 공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갚아야 할 돈을 공탁소에 맡기면, 그 빚이 면제된다.

정부 계획이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결국 법적 다툼이 이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정부가 채택한 방식은 법률상 '제3자 변제'에 해당한다. 쉽게 말해 배상금을 내야 할 '채무자'는 일본 기업인데, 이를 '제3자'인 우리 정부가 설립한 재단이 대신 갚아준다는 계획이다.

민법(제469조)은 제3자가 대신 채무를 갚을 수는 있다고 정하고 있다. 그런데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 표시'로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으면 그럴 수 없다. 또 이해관계 없는 제3자는 채무자 의사에 반해 변제할 수 없다.

정부는 공탁 방법까지 검토하고 있지만, 양 할머니 등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이 방안이 법률상 무용하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양 할머니 측은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대신 돈을 갚아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계속 다툴 예정이라고 한다.

일본 기업들은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인정하지 않으며 강제징용을 부인해왔다. 피해자 측은 이해관계 없는 제3자라고 할 수 있는 재단이 손해배상 의무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강조했다.

재단이 일본 기업과 함께 채무를 부담하는 지위를 획득하고, 재단이 손해배상금을 모두 지급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 경우는 채무자가 아예 바뀌는 방식, 재단이 채무자로 추가되는 방식으로 나뉜다.

채무자가 바뀌는 방식은 채권자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재단이 일본 기업에 이어 채무자로 추가되는 방식이 채택되면 강제징용 피해자의 동의가 필요하진 않다고 한다.

둘 중 어떤 방안이 실행된다고 해도 법적 다툼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피해자 측은 재단과 일본 기업들 사이 계약의 성질에 대해서 다툴 수 있다. 또 피해자 측의 의사와 반대되는 제3자 변제가 정당한지도 판단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SW

p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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