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김일성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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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김일성 생일’
  • 양승진 논설위원
  • 승인 2023.05.1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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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동상. 사진=시사주간 DB

[시사주간=양승진 논설위원] 북한에서는 김일성 생일(태양절)을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부른다. 김일성은 과거 36년간의 일제 식민지통치 시대를 끝내고 나라를 해방한 ‘민족의 태양’, 조선인민의 ‘생명의 은인’으로 높이 칭송하는 의미로 이를 성대히 기념해 왔다.

북한 주민들은 이날을 반겼다. ‘생명의 은인’에 대한 칭송보다는 지도자로부터 선물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답게 식품과 쌀, 술, 담배, 학용품, 학생복 등이 지급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제 상황을 반영해 수도 평양 이외는 선물의 양과 질이 모두 형편없거나 아예 지급되지 않았다.

양강도의 중심 도시인 혜산시 주민들은 이번 태양절에 손가락만 빨았다. 쌀과 옥수수 등은 없고 국영 상점을 통해 칫솔과 빨랫비누를 나눠줬을 뿐이다. 그나마 국영기업과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특별배급이 지급됐다. 혜산광산의 경우 노동자 1인당 옥수수 7kg이었다.

함경북도 무산군 주민들도 쌀과 옥수수 지급은 없었고 세대당 고작 빨랫비누 1개가 지급됐다. 북한 최대의 철광산인 무산광산은 노동자들에게 옥수수 5kg을 특별배급했다. 여기에도 특별한 사연이 있다. 무산광산은 당초 태양절 선물로 중국산 백미 2.5kg를 준비했었다. 양이 적은 것 같아 쌀을 팔아 옥수수 5㎏으로 늘렸다. 장마당에서 백미 1kg은 6000원(북한 돈)이고, 옥수수는 2900원이기에 거의 2배 가격이다. 광산 측은 1만명에 달하는 노동자를 위해 질보다 양을 택한 셈이다.

‘태양절’ 특별배급은 지도자가 인민을 배려해 하사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당국은 재정난으로 못하게 되자 국영기업들에게 자력으로 준비해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국가로부터 보조가 없으니 기업별로 양과 질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태양절 선물을 받은 것도 아니고 안 받은 것도 아닌 참으로 이상한 명절이 됐다는 반응이다. 

더 특이한 것은 당국이 태양절 경축행사를 대부분 취소한 데 있다. 원래는 지방별로 ‘충성의 노래’ 모임과 지역 주민들이 광장에 모여 분위기를 띄우는 ‘경축 무도회(군중무용)’, 단위별 체육경기, 길거리 가창행진 등이 마련되지만 모든 행사가 중앙의 지시로 취소됐다. 다만 개별적으로 김일성 태양동상과 모자이크판, 교시판에 하던 헌화만 그대로 진행됐다.

김정은 또한 이상한 생일 행사를 치렀다.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고 대신 딸 주애와 여동생 김여정, 고위간부들과 함께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 사이의 체육경기를 관람했다. 김정은이 2011년 집권 이후 태양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코로나19 대유행이 심각하던 202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살아있는 현 권력을 띄우기 위해 선대 수령에 대한 찬양분위기를 축소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집권 초반 할아버지를 따라 하던 코스프레(cosplay)는 온데간데없고 ‘김정은식 통치’를 시작한다는 지적도 있다.
 
주민들은 특별배급보다 이게 백배는 낫다고 입을 모은다. 특별배급을 못 주니까 주민을 괴롭히는 경축행사도 안 하니 김정은식 명절을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고 보면 민족 최대의 명절인 ‘김일성 생일’치고는 ‘참 이상한 생일’이 됐다. SW

ysj@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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