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실’ 그리고 ‘강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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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 그리고 ‘강영실’
  • 양승진 논설위원
  • 승인 2023.05.2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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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시사주간 DB

[시사주간=양승진 논설위원] ‘영실’과 ‘강영실’이라고 써 놓고 보니까 마치 여자 이름 같다. 사실 ‘영실’ ‘강영실’은 북한에서 쓰는 용어다. 당국에서는 쓸 리 없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아주 오래된 용어다.

‘영실’은 영양실조의 준말이고, ‘강영실’은 강한 영양실조를 줄여서 쓴 말이다. 이것으로 보면 영양실조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 된다.  

북한에서는 모든 것에 ‘영실’이 적용된다. 벼가 튼실하지 못할 때 쓰기도 하고, 강냉이가 비실거려도 이 말을 쓴다. 비료공급이 제대로 안 되니까 신년 1월 초부터 분뇨를 수거하고 퇴비는 물론 연탄재도 비료로 둔갑하는데 다 ‘영실’ 때문이다.

군에서도 ‘영실’이 많다. 복무하는 병사 중에 이유 없이 집으로 가는 사람은 ‘영실’에 걸린 군인이다. 군에서도 식량이 부족해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부족한 식량에 대해 부대가 책임져야 하지만 이마저도 능력이 안 되는 부대는 굶을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강원도와 황해도 지역 2군단에 배치되는 군인은 “영실에 걸리러 간다”고 할 만큼 식량 공급이 적다고 알려져 있다. 지역 농장에서 생산하는 농작물보다 군인 수가 많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강영실’에 걸린 사람은 감정 제대(의가사 제대)를 하는데 잘못하다가는 군에서 시체를 치워야 하기에 아예 집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북한군으로 있다 탈북한 사람들에게는 웃지 못할 추억이 있다. 남한에서 날아온 적재물자 때문이다. 군 당국에서는 남조선에서 보낸 것에는 방사성 물질을 투입해 먹으면 서서히 죽거나 암이나 질병에 걸린다고 선전한다. 무조건 먹지 말고 신고하라고 하는데 ‘영실’이 눈앞에 닥친 군인들이 이를 보고 참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군인들은 통조림을 꺼내 개미둥지에 조금 뿌린 후에 개미들이 달려들어 먹으면 개미들도 먹는데 나라고 못 먹겠냐며 그때부터 남조선에서 온 물건들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남조선 적재물자는 부작용도 있다. 영양가 없던 것만 먹다가 어느 날 칼로리가 높은 통조림을 몇 개 먹으면 속에서 받질 못해 설사를 하거나 구토를 한다. 그러다 시름시름 앓으면 남조선 적재물 때문이라고 타박을 한다.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지난달 17일 ICBM 화성포-17형을 발사하는 곳에 나타났다. 툭하면 데리고 나타나니 새삼 놀라울 일은 아니지만 노동신문 1면에 실린 딸 사진은 다른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내 자식은 ‘영실’인데 저 애 얼굴은 ‘달덩이’ 같다는 주민들의 볼멘소리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3월 유엔 인권이사회(UNHCR)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전체 인구의 42%가량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북한 인구의 41.6%는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것으로 추정돼 가정에서 하루 3끼를 먹는 일은 사치스러운 것이 됐다고 했다.

북한 소식통은 함경북도 무산군의 경우 한 동네에서 지난달 4명이 죽었고, 곧 죽을 사람이 두 명이나 된다는 소식이다. 이들은 결핵, 간염, 천식 등 지병이 있는 사람들로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니 죽을 날만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세상에 부럼 없어요’를 외치는 북한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TV에는 ‘달덩이’ 같은 사람들만 비추고 있으니 그야말로 주민들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SW  

jed0815@econom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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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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