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적장애인이자 양성애자' 편견에 맞서는 윤고은씨(상)
상태바
'나는 지적장애인이자 양성애자' 편견에 맞서는 윤고은씨(상)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1.08.07 09:05
  • 댓글 0
  • 트위터 387,18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수어 ‘I Love You’(사랑해)를 해보이고 있는 윤고은씨. 사진=윤고은
미국 수어 ‘I Love You’(사랑해)를 해보이고 있는 윤고은씨. 사진=윤고은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장애인복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장애인 등록을 해야 한다. 장애인등록 제도는 1981년 제정된 “심신장애자복지법”에 근거하여 1987년부터 시행이 되었다. 30여년이 흘러 2019년 7월, 장애인의 등급을 나누던 제도는 폐지되었지만 등록제도는 시행 중이다.

예전에는 장애등록을 기피하는 이들이 많았다. 장애인으로 등록하는 순간 ‘장애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주위의 편견 때문에 좌절하기도 하고,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장애로 인한 불편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았다. 

장애인 복지혜택이 늘어나고, 편견이 줄면서 장애인 등록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여전하다. 이러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려 많은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윤고은(22)씨도 그 중한 사람이다. 

윤고은씨는 정당 활동을 한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단체인 ‘한국피플퍼스트’의 활동가이면서 대표도 맡고 있다. 한국장애인부모회 의성지부에서 활동도 하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수어통역사가 되려고 고급과정의 수업을 듣고 있다. 그러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생활지원사로 일하고 있다.

◇ 장애를 드러내다

윤고은씨는 어려서 꿈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욕심도 많았다. 하지만 자신의 장애가 앞날을 가로막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장애를 ‘극복’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교회도 열심히 다녔고, 인터넷을 뒤지며 ‘장애인 티’를 안내려 공부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실망했지만, 장애를 수용하기로 했다.

윤씨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주변사람들이 장애를 이해해주고 감싸주었다. 가끔 장애를 자각하게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상처받지 않고 올곧게 자라났다. 그렇게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남다름은 장애인복지카드를 발급받으면서 명확해졌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 발급받은 카드에 ‘장애 3급’과 ‘지적장애’라고 명시되어 있었고, 보호자의 전화번호도 기입되어 있었다. 성인이 되어도 보호자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자라오는 동안 주변사람들이 왜 자신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봤었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었다. 말을 해도 이해를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위선자 같았다. 

그렇게 며칠을 혼자 끙끙 앓았다. 그러다 장애를 숨기는 행동도 위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애를 숨기다 받는 상처는 더 클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지적장애인’이라고 밝혀 자신과 주변사람들에게 당당해지기로 마음먹었다.

2018년 11월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열린 장애인가족지원 정책토론회에서 사례발표를 하고 있는 윤고은씨(왼쪽 발표자).  사진=경상북도장애인부모회
2018년 11월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열린 장애인가족지원 정책토론회에서 사례발표를 하고 있는 윤고은씨(왼쪽 발표자). 사진=경상북도장애인부모회

◇ 수어통역사의 꿈

윤고은씨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때 가족이 모여 아침을 먹으며 TV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때 화면 귀퉁이에서 웃다가 인상을 쓰기도하며 춤을 추는 것 같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신기하다는 생각에 “저거 뭐야? 엄청 재미있게 춤을 추고 있어.” 했더니 부모님은 “뉴스에서 무슨 춤을 춘다고 그러니, 밥이나 먹고 학교가!!”라고 윤씨의 입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그 장면은 잊을 수 없었다. 

저녁에 부모님께 다시 물어봤지만 모른다고 했다. 참을 수가 없어서 학교에서 선생님께 물었더니 ‘수어통역’이라고 알려주었다. 윤고은씨는 “그럼 왜 뉴스에서 춤을 추는 거예요?” 했더니 선생님은 수어통역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농인(청각장애인)’이나 ‘수어’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며칠 후 선생님의 설명을 더 듣고 나서야 감을 잡았다. 하지만 농인을 만나게 된 것은 5여년이 더 지난 후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수학 선생님에게 수어의 지문자(指文字)를 배웠다. 너무 재미있어 그때부터 수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수어를 배우고 싶어 부모님을 졸랐다. 수어를 배우는 곳을 찾아주면 열심히 배우겠다고 결심을 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는 한글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모자란 사람들의 말’을 왜 배우려 하느냐, 남들처럼 돈을 벌 수 있는 것을 배우라고 핀잔만 주었다.

윤고은씨는 오기가 생겼다. 당시 수어에 대한 정보가 빈약하여 어디서 수어를 배워야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 사이트와 유튜브에 올라온 수어들을 보면서 독학을 했다.

그렇게 대학교 2학년까지 아빠가 무어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공부를 했다. 대학교 2학년 가을학기에 사회복지사 실습 장소가 수어통역센터로 정해지면서 그제야 아빠는 수긍을 했다.

그러던 중 교회를 다니는 농인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만났던 농인은 보청기를 사용하는 구화인(口話人)이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 수어하는 모습에 겁을 먹었다. 하지만 윤고은씨의 입술을 보면서 이야기도 들어주고 답변해 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그 후 그 농인에게 틈틈이 수어를 배워나갔다.

수어를 배우면서 농인은 윤씨에게 수어이름(얼굴이름)도 만들어주었다. 농인이 만들어준 수어이름은 ‘웃다’와 ‘여자’라는 수어기호를 합친 ‘웃는 여자’였다. 잘 웃는 윤씨의 특성을 수어이름에 담아준 것이다. 

윤고은씨는 자부심이 생겼다. 수어이름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은 농인들이 자신의 일원으로 받아들겠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 계속) SW

k646900@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