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한다더니 세입자 내보낸 뒤 매매…法 "손해배상 하라"
상태바
실거주한다더니 세입자 내보낸 뒤 매매…法 "손해배상 하라"
  • 이보배 기자
  • 승인 2023.01.31 07:40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원 "불법 행위 맞아, 이사비·임차료 등 배상해야"
건물 매수 후 직접 장사하고 싶다면 "권리금 줘야"
서울시내 아파트 전경. 사진=뉴시스
서울시내 아파트 전경.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이보배 기자] 실거주한다는 이유로 세입자의 계약갱신을 거부한 뒤 집을 판 집주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단독(정진원 부장판사)은 최근 세입자 A씨 모자가 집주인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 모자가 다른 집을 임차하면서 추가로 부담하게 된 월세와 그 이자 등 손해액을 2000만원으로 산정하고, 지출한 이사비와 중개수수료 등도 반영해 B씨가 A씨에게 총 2861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갱신 거절 남용…계약갱신요구권 의미 퇴색 우려

재판부에 따르면 A씨 모자는 B씨 소유의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에 대해 2019년 12월28일부터 2021년 12월27일을 만료 일자로 보증금 12억4000만원에 2년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뒤 거주했다. 

기간만료로부터 약 두 달 전 B씨 측에 임대차계약 갱신을 요청했지만, 집주인 B씨는 '해당 아파트에 실제로 거주하겠다'며 갱신 요구를 거절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1항은 임차인이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계약갱신을 요구하면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A씨 부자는 '2년+2년'의 계약 연장을 기대했지만, 임대인(직계존·비속 포함)이 해당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등에는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둔 탓에 수포로 돌아갔다.

A씨 부자는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이사비용 281만원, 중개수수료 580만원 등 부대비용을 지불했고, 전세로 월세 부담이 없었지만 새로 이사 간 집에서는 월세 150만원도 부담하게 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B씨는 해당 아파트의 임대차계약이 만료되기 10일 전 해당 아파트를 타인에게 매매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 모자는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지불한 부대비용과 새롭게 지불하고 있는 월세 등을 B씨가 배상해야 한다며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원고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B씨 측은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했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목적 주택을 임대한 경우 임대인은 갱신 거절로 임차인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한 현행법을 근거로 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임대인이 신규 세입자를 들인 경우와 달리 매매를 한 경우에 대해서는 배상 조항이 없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재판부는 "임대인이 실제로 거주하지 않고 제3자에게 목적 주택을 매도한 경우는 '임대인은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구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현행법을 위반한 행위로 보기 충분하다"면서 B씨의 행위를 계약갱신청구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사유인 '임대인이 실제로 거주하려는 경우'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장래의 상태에 대한 임대인의 주관적 의도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임차인 쪽에서 그 사유의 발생 여부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사유를 제한 없이 인정한다면 이로 인한 갱신 거절이 남용돼 사실상 계약갱신요구권의 의미가 퇴색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 동대문 상가거리. 사진=시사주간DB
서울 동대문 상가거리. 사진=시사주간DB

◇상가 임대차에서는 새로운 건물주 '권리금' 줘야

반대로 상가 임대차에서는 건물주가 바뀌더라도 기존 세입자와 계약관계는 그대로 유지된다. 즉, 세입자의 갱신요구권과 권리금 보호 의무도 새 건물주에게 승계된다는 뜻이다. 

이 같은 경우에는 건물을 매수한 건물주가 직접 건물에서 장사를 하고 싶다면 기존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보상해줘야 한다. 

엄정숙 부동산 전문변호사는 "이미 비워진 점포에 건물주가 직접 장사를 하는 경우와 달리 기존 세입자가 있고 계속 장사를 할 계획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만약 건물주가 직접 장사를 하고 싶다면 세입자에게 권리금 상당의 보상을 해주지 않는 한 건물주라도 세입자를 함부로 내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엄 변호사는 "상가 임대차에서는 최초 계약일로부터 세입자가 10년간 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서 "만일 세입자가 계속 장사를 하겠다고 버틴다면 건물주가 강제로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덧붙였다. 

또 갱신요구권이 해결되더라도 세입자의 권리금 회수 기회는 보장해야 한다. 

세입자가 10년 동안 갱신요구권을 행사해 계약 갱신이 불가한 상황이나 계약 연장 의사가 없는 경우에도 법률상 건물주는 세입자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인데, 특히 건물주가 직접 장사를 한다면 세입자가 신규 세입자 주선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건물주가 직접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줘야 한다. 

엄 변호사는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충분한 보상으로 계약이 종료된다면 권리금에 대한 부분도 합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면서 "따라서 건물주는 합의 당시에 갱신요구권과 권리금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세입자에게 해야 법률상 세입자를 안전하게 내보내고 장사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건물주가 법률을 무시하고 세입자의 권리금 보호 의부를 다하지 않는다면 위법에 해당한다. 이 경우 세입자는 권리금 보호 의무를 무시한 건물주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SW

lbb@economicpos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