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영아 목숨과 바꾼 '출생통보제'···늦었지만 속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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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영아 목숨과 바꾼 '출생통보제'···늦었지만 속도 낸다
  • 이보배 기자
  • 승인 2023.06.26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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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8년간 출생신고 안 된 아동 2236명
23명 조사 3명 사망…보건복지부 전수조사 실시
여야, 오는 29일 법사위 전체 회의서 본격 논의
출생통보제는 2019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추진돼 왔지만, 21대 국회에는 법무부 안을 포함해 관련 법안 12건이 계류 중이다. 사진=pixabay
출생통보제는 2019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추진돼 왔지만, 21대 국회에는 법무부 안을 포함해 관련 법안 12건이 계류 중이다. 사진=pixabay

 

[시사주간=이보배 기자] 최근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돼 30대 친모 A씨가 구속됐고, 경기 화성에서는 출생 미신고로 경찰에 적발된 미혼모 B씨가 '인터넷에서 아기를 데려간다는 사람이 있어 넘겼다'는 사실이 확인돼 충격을 줬다.

이처럼 출생신고가 안 된 영유아 관련 사건이 드러나자 정부는 이제라도 부모가 아닌 의료기관의 아동 출생 정보 신고를 의무화하는 '출생통보제'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영아살해 혐의를 받는 A씨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두 차례 출산한 아이를 살해해 시신을 자신이 살고 있는 수원시 소재 아파트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해 왔다.

이 사건 이전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 3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던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형편 등 문제로 키울 자신이 없어 아이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B씨는 경찰에서 "인터넷을 통해 아이를 입양 보냈다"고 진술했다. '네이버 지식iN'에 개인 입양 의사를 담은 게시글을 올렸고, 이를 통해 만난 신원 미상의 대상에게 출산 직후 아이를 보냈다는 것.

현행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기는 입양할 수 없다. 하지만 정식 입양 절차를 밟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출산 사실 자체를 숨기고자 하는 부모들 가운데서는 이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불법 입양'을 진행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출생신고가 안 된 영유아를 살해·유기하거나 '온라인 불법 입양'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22일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임시신생아번호만 있는 영유아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3월부터 복지부 대상으로 실시한 정기 감사 과정에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의료기관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신고 영유아가 2236명에 달한다고 확인했다.

복지부가 이 2236명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것인데, 감사원이 이중 위험도가 높은 1%인 23명을 선 조사한 결과, 최소 3명의 영아가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복지부가 전수 조사에 본격 나설 경우 비슷한 사례가 무더기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정부는 이 같은 참극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하는 '출생통보제'와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게 지원하는 '보호출산제'를 조속히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아동의 부모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에도 신고 의무를 부과해 출생신고 누락을 예방한다는 취지다.

출생통보제는 2019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추진돼 왔지만, 21대 국회에는 법무부 안을 포함해 관련 법안 12건이 계류 중이다. 이와 관련 여야는 미등록 영유아 문제 해결에 한목소리를 냈다.

정부는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하는 '출생통보제'와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게 지원하는 '보호출산제'를 조속히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사진=뉴시스
정부는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하는 '출생통보제'와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게 지원하는 '보호출산제'를 조속히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사진=뉴시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섬뜩함을 느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당장 대책 마련에 착수하겠다"면서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직접 등록하는 출생통보제와 임신부가 의료 기관 밖에서 출산하는 경우 위험을 막기 위해 익명 출산을 지원하는 보호출산제 등의 조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고, 민주당 원내 관계자 역시 "사회적 충격이 커서 하루빨리 합의 처리해야 하는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여야는 제도 보완 요구가 커지고 있는 만큼 오는 29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또 정부·여당은 지난 23일 전담 TF를 꾸려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출산통보제를 도입할 경우 출산과 임신 사실을 밝히기 꺼리는 산모들이 병원에 가지 않아 음지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보호출산제'를 병행 추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호출산제'는 익명으로 출산하고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한편, 22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는 성명을 통해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실태 파악과 조속한 출생통보제 도입을 촉구한다"면서도 보호출산제에 대해서는 아동의 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모의 정보를 숨기는 것이 아동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아동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네트워크는 "이 같은 접근 방식으로는 그 누구도 보호할 수 없다. 오히려 아동의 뿌리를 알고 정체성을 가질 권리, 양육과 보호의 청구권을 영구히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익명으로 출산이 시행되는 국가에서도 영아살해, 아동 유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경험적 증거"라면서 "익명출산제(보호출산제)가 아니라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어떻게 완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W

lbb@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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