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에 전쟁, 곡물가격 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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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에 전쟁, 곡물가격 급등
  • 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
  • 승인 2023.09.1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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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식량안보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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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이 난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농업이다. 갈수록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작물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극심한 폭우와 가뭄이 반복되고 병해충(病害蟲)이 크게 늘면서 농업 생산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에 새로운 환경에 맞춘 종자(種子) 개량이 시급한 상황이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侵攻)으로 시작된 전쟁(Russo-Ukrainian War) 이후 러시아가 지난 7월 24일 다뉴브강 항구도시 레니에 공습을 퍼붓자, 세계 곡물 시장은 요동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Black Sea Grain Initiative) 파기로 전 세계 곡물 가격이 최고 15%가량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극단적인 폭염과 폭우가 이어지는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까지 맞물리면서 전 세계 식량난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계획(WFP) 등은 안보 위기와 이상기후 현상이 지속하면 지구에서 생산되는 식량이 인류를 먹여 살릴 양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식량(限界食糧)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세계식량계획(WFP)이 전 세계 난민 1억2500만명을 지원하기 위해 구입하는 곡물의 절반가량이 우크라이나산(産)이다. 흑해곡물협정이 발효된 이후 우크라니아는 밀, 옥수수 등 3280만t의 식량을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수출해왔다. 엘니뇨(El Nino)현상에 따른 인도의 쌀 수출 중단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국가는 베냉, 중국, 세네갈, 토고 등이다. 

유럽 과학자들은 올해 7월이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운 달이라고 말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7월에 전 세계 평균 지표면 기온이 16.95도에 달해 지표면 기온 측정을 시작한 1979년 이래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고라고 발표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UN 사무총장은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의 시대는 끝나고 지구 열화(熱化·boiling)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지난 7월 27일 말했다. 

환경운동가 엘 고어(Al Gore) 전 미국 부통령(1993-2001)이 최근 ‘서울 기후 리더십 양성 교육(Seoul Climate Rearlity Leadership Training)’ 참가를 위해 방한했다. 기후 위기 비영리단체 ‘클라이밋 리얼리티 프로젝트(CRP)’이 주최한 회의가 한국에서 개최되기는 처음이다. CRP는 기후 위기에 대한 즉각적 행동과 함께 글로벌 해결책을 촉구하기 위해 앨 고어가 2006년에 설립했다. 

교육은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8월 19-20일 개최되었으며, 환경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엘 고어는 기후 위기 앞에 우리에게 ‘변화해야만 할까?’ ‘변화할 수 있을까?’ ‘변화할 것인가’ 등 3가지 질문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엘 고어는 이들 세 가지 질문의 답은 모두 ‘예스’였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변화해야만 한다. 지구의 경고를 무시하고 무모한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폭염, 홍수, 산불, 태풍 등 기후 위기는 악화할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우리는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 2050년까지 ‘넷제로(Net Zero, 탄소중립)’에 도달한다면 기온 상승을 멈출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 질문에는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으므로 우리는 변화할 것이다. 

엘 고어(75)는 “한국이 기후 위기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전쟁의 폐허와 빈곤을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일군 나라다. 가장 혁신적인 하이테크 국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와 잠재력을 감안하면 기후 위기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맡아 영감을 주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한국은 자동차, 반도체 등에서 효율을 중시해 왔기 때문에 ‘탄소 중립’을 향한 여정을 더 효과적으로 이끌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엘 고어는 빌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 행정부에서 ‘실세 부통령’으로 불렸다. 환경과 IT산업, 통신 정책 등을 전담했다. 그는 무엇보다 관심을 쏟은 분야는 환경이었으며, ‘교토 의정서(京都議定書, Kyoto Protocol)’ 창설을 주도했다.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여섯 종류의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고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 국가에는 비관세 장벽을 적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 의정서는 1997년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지구온난화 방지 교토 회의’에서 채택됐다. 

많은 사람들은 지구온난화(地球溫暖化)가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 약 1760-1820)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쌓였다가 이제야 갚을 때가 된 도덕적 경제적 부채와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기 중에 배출된 탄소 중 절반 이상은 불과 30년 사이에 배출됐다. 

기후 재난의 첫 번째가 살인적인 폭염(暴炎)이다. 여러 자료에서 지구의 평균 기온이 1.5도 상승하게 되면 얼마나 위험한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탄소배출량을 유의미하게 줄인다 하더라고 2100년까지 기온은 4도 상승할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날씨가 한층 더 건조해지면 더욱 심각한 화재가 빈번해질 것이다. 또한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한 바다의 범람도 문제이다. 

미국 뉴욕매거진(New York Magazine) 부편집장인 데이비드 윌러스 웰즈가 ‘지구의 날’ 50주년을 맞이해 출간한 ‘2050 거주불능 지구(The Uninhaitable Eaerth)’는 각종 자료와 통계적 근거를 바탕으로 믿을 만한 기후변화의 미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기후변화의 막대한 영향력을 규명하는 이 책은 걷잡을 수 없는 전염병 등으로 총체적 위기를 맞이한 인류 사회의 미래 보고서다. 

저자가 관련 연구를 바탕으로 제시하는 2050년 지구의 모습은 이렇다. “여름 최고기온 평균이 35도를 넘는 도시가 현재 약 350개에서 970개로 늘어나고, 매년 전 세계 50억명 이상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폭염으로 연간 25만5000명이 죽는다. 미국 시카고에서 1995년 7월 13일부터 1주일 동안 폭염으로 약 700명이 사망했다. 기온은 41도, 체감온도는 52도까지 올랐던 때다. 

체온이 40도 안팎까지 올라 뇌와 장기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중증인 열사병(熱射病)과 일사병(日射病)이 있다. 온열질환(溫熱疾患) 원인은 체내 혈액과 수분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 주원인이다. 고온으로 몸이 뜨거워지면 우리 인체는 체온을 낮추기 위해 혈액량을 늘리고 땀을 배출해 열기를 발산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수분과 염분을 잃는다. 이것이 지속되면 온열질환에 걸리며, 어지럼증, 무기력, 의식 불명 등이 나타난다. 올해 국내 온열질환자가 작년보다 47% 급증했다. 

온열질환 대처와 예방은 신속히 체온을 낮추는 게 관건이다. 물수건으로 몸을 닦거나 몸에 물을 뿌려 최대한 체온을 낮춰야 한다. 환자가 의식이 없다면 음료가 기도(氣道)를 막을 수 있어 위험하다. 낮 12시부터 5시까지 야외에 나가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야외 활동 시 목이 마르지 않아도 1시간마다 물을 마시고 쉬어야 한다. 양산과 챙이 넓은 모자로 햇볕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1995년 당시 폭염은 몇 가지 요소가 모여 발생한 기상학적 사건이라 규정했던 시카고 정부, 그리고 언론은 사망 원인이 아닌 숫자에만 집중해 보도했다. 저자는 폭염으로 인한 죽음이 ‘사회적 비극’이란 결론을 내린다. 즉 사망자 중 상당수가 혼자 사는 노인, 에어컨 없이 빈곤층이 모여 사는 지역에 거주했다. 위치나 인구 구성 등 조건이 비슷한 두 도시 사이에서도 이웃을 돌보는 ‘공동체’의 유무에 따라 사망자 수가 크게 달라졌다. 

저자는 폭염 문제의 해결책이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기후변화가 총망라적인 재앙이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 탄소 배출 억제를 위해선 강제성을 지닌 전 세계적 약속이 필요하겠지만, 지구온난화가 지구나 특정 사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웃에게 관심을 갖는 공동체(共同體)를 뜻한다. 

올여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폭염 등 기상이변이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의 영구동토(永久凍土)도 위협하고 있다. 영구동토는 여름에도 녹지 않고 얼어 있는 땅 등을 말하여, 북반구 육지 표면의 약 14%(2100만km2)를 차지하고 있다. 온난화로 영구동토가 녹아내려 그 안에 갇혔던 탄소 퇴적물이 메탄과 이산화탄소로 방출되면 온실효과가 심화되어 지구 온난화가 더 악화될 수 있다. 또한 얼어붙었던 바이러스 등도 활성화해 신종 전염병이 발생할 위험도 제기된다. 

과학계는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의 해빙(解氷)이 기후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지구 온난화에 더해 신종 질병이 퍼지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해빙으로 활성화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등의 영향으로 인류가 면역을 갖추지 못한 새로운 질병이 퍼지면 코로나19 팬데믹 못지않은 치명적 피해가 발생할 우려도 제기된다. 유럽의 연구진이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발견된 수만년 전 바이러스가 지금도 전염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감사원(Board of Audit and Inspection)이 8월 22일 공개한 ‘기후 위기 적응 및 대응 실태(물과 식량 분야)’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2100년까지 연간 최대 6억2630만t의 물이 부족해질 것으로 예측됐다. UN관련 기관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내놓은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관계 기관들이 물과 식량 수급을 다시 예측하게 해 구한 결과다. 

환경부가 2021년에 세운 제1차 국가 물 관리 기본계획에서 2030년에 물이 연간 1억420만-2억5600만t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새 예측에 따르면 2030년대 물 부족량은 연간 2억8460만-3억9700만t에 달한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물 부족 규모가 예상보다 2배가량 늘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물 부족 정도도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식량 부족 가능성도 제기됐다. 기후변화에 따라, 1000m2당 쌀 생산량은 2020년 457kg에서 2060년 366kg으로 19.9%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대부분 수입하고 있는 밀, 옥수수, 콩 등 다른 작물들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감소해 2035-3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수입할 수 있는 양도 밀은 33.8%, 콩은 63.1%, 옥수수는 25.8%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감사원은 우리나라가 북미 등 일부 국가에 대한 식량 수입 의존도를 유지하고, 기후변화로 인해 북미 등 특정 지역에서 급격한 생산 위기가 발생하면, 식량 공급에 위기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반도 주변 바다 온도가 최대 4-5도 상승하면서, 연·근해 어획량도 2020년 93만t에서 2100년 52만t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우리의 배부름 풍요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자연재해는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의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는다. 지난 20여년간 인류는 지구온난화와 전쟁 중이다. 앞으로 지구상의 공기는 더욱 뜨거워질 뿐만 아니라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기후 경고에 대한 내용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나 개개인의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에 우리의 인식이 인류와 지구를 ‘한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는 관점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SW

pmy@sisa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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