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환이 만들어 낸 '한국축구의 흥망성쇠'
상태바
박종환이 만들어 낸 '한국축구의 흥망성쇠'
  • 황채원 기자
  • 승인 2023.10.10 07:25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종환 감독. (사진=뉴시스)
故 박종환 감독. 사진=뉴시스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지난 7일,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이 아시안게임 3연패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개막 직전 잇달은 졸전으로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본선 무대에서 뛰어난 공격력을 보여주면서 중국과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결승에서 일본을 잡으며 대업을 이룩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멕시코 4강 신화'를 만들었던 박종환 감독(85)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박종환 감독은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표팀을 4강에 올려놓으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발돋움했다. 한국의 돌풍을 외신은 '붉은 악마'라는 말로 표현했고 이는 바로 우리 대표팀을 응원하는 응원단의 이름이 됐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천안 일화의 K리그 3연패를 이룬 이도 그였으며 한국 여자축구의 초석을 다진 이도, 지금의 대구 FC를 만들어낸 이도 역시 그였다.

하지만 박종환 감독은 멕시코의 신화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물러난 뒤 대표팀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게 되면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소환되곤 했다. 카리스마있는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이 당시 축구팬들과 전문가들의 이야기였지만 이른바 '빠따'를 들었다는 설은 계속해서 흘러나왔고 선수들과 갈등을 빚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다.

그의 축구 인생이 바뀐 것은 바로 1996년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2-6으로 참패를 당한 경기였다. 당시 스트라이커 알리 다에이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할 정도로 졸전을 펼치면서 박종환 감독은 더 이상 국가대표를 맡을 수 없었다. 이후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5-0 참패를 당한 한국 축구는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바로 그 네덜란드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한다. 거스 히딩크 신화의 시작이었다.

K리그도 마찬가지였다. 대구FC 감독에서 물러난 뒤 7년이 지난 2013년 12월에 그는 시민구단으로 재창단된 성남 FC의 감독으로 전격 내정됐다. 성남 FC의 전신인 '성남 일화 천마'의 전신이 바로 박 감독이 우승시켰던 천안 일화였기에 천안 일화의 기적을 다시 만들어내자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난 것이다. '박종환식 축구'는 그야말로 2010년대에 어울리지 않는 기술이라는 것이 드러났고 여기에 용병 선수에 대한 독설과 선수 폭행 사실이 드러나면서 박 감독은 결국 불명예 퇴진을 하고 만다.

박종환 감독을 이번 '이슈피플'에서 거론한 이유는 바로 그의 축구 인생에 한국 축구의 흥망성쇠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 축구, K리그를 발전시킨 공로는 인정을 받지만 그 과정에서 나온 스파르타식 훈련과 선수들의 반발은 결국 아시안컵 참패와 성남 FC 불명예 퇴진이라는 과를 남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실패는 지도자들의 세대 교체, 외국인 감독 선임 등의 개혁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그리고 이후 각종 국제대회에서의 선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축구사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감독, 그가 바로 박종환이다. SW

hcw@economicpos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