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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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3.11.1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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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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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청구영언(靑丘永言)에는 구설(口舌)에 대한 멋진 시가 있다. 바로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가 바로 그것이다.

말(言)은 한 인간의 품성을 보여준다. 입을 잘못 놀려 망한 경우는 인간 세상에 수도 없는 교훈을 줬다. 그러나 말을 멋지게 하면 사람들의 찬사를 받기도 한다. 필자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말은 링컨 대통령이다.

공화당 후보를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던 상원의원 라이벌 더글러스는 대통령후보 합동회견 자리에서 “링컨은 말만 그럴 듯하게 하는,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비난했다. 링컨은 침착하게 답했다.

“더글러스 후보가 저를 두고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여러분께서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제가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면, 오늘같이 중요한 날 잘 생긴 얼굴로 나오지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

자신을 비난하는 상대가 오히려 얼굴이 붉어질 수도 있는 이런 멋진 대응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이 정도는 되어야 말을 제대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진정한 군자는 빈 말을 적게 하고, 실제로 일을 많이 한다.”고 했다. 제자인 자공이 군자에 관하여 묻자, 공자는. “말보다는 행동을 앞세워라, 그러면 사람들은 따른다”고 했다.

행동을 말보다 앞세워야지, 이런 저런 소리나 늘어놓고 뒤에서 불평을 하는 것은 자신의 얼굴에 오물을 뒤집어 쓰는 것과 다름없다. 어떤 때는 침묵이 오히려 웅변보다 나은 경우가 있다.

1800년대에 활동했던 허주라는 스님이 있었다. 말없이 진리를 드러내는 불언무위(不言無爲) 설법으로 유명하다. ​어느날 화계사에서 수백 명의 청중을 앞에 두고 법문을 시작했다. 그런데 법상에 오른 허주는 1시간 동안이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앉아 있다가 내려왔다. 그게 설법의 전부였다. 한참 지난 후 어떤 사람이 이유를 물었다. 허주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자리는 언어도 끊어지고, 생각도 끊어진 자리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내게는 눈곱만큼도 허물이 없다.”

도대체 무슨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 아마도 침묵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되돌아 보고 반성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라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요즘 말로 자신의 인격을 까먹은 사람이 드물지 않는 것 같다. “건방진 놈”, “물병을 머리에 던져 버리고 싶다”(송영길 전 대표), “관종”(고민정 최고위원), "금도를 지키지 못하면 금수다. 한동훈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금수의 입으로 결국 윤석열 대통령을 물 것(김용민 의원)", "단언컨대 정치를 후지게 한 건 한동훈 같은 XX들(민형배 의원)", “미스터 린튼(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등 도무지 한나라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는 품격을 찾아보기 힘들다. 마치 시정잡배들처럼 막말을 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인성이 참하고 선한 품성이 바른 정치를 이끈다는 말이 실감난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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