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백, 명불허전의 고밀도 연극 '즐거운 복희'.
상태바
이강백, 명불허전의 고밀도 연극 '즐거운 복희'.
  • 시사주간
  • 승인 2014.09.01 10:53
  • 댓글 0
  • 트위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들의 욕망과 이기심은 비극을 빚어내고 현실의 틈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시사주간=문화팀]
   극작가 이강백(67)씨는 우화(寓話)의 대가다. '파수꾼', '결혼', '북어대가리', '봄날' 등의 연극에서 상징화된 인물과 이야기로 현실을 풍자했다.

최신작 '즐거운 복희'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적한 호숫가 펜션 마을에 몰려든 인간들의 욕망과 이기심은 비극을 빚어내고 현실의 틈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대한제국의 백작 작위를 이어받았다는 백작, 펜션에서 사망한 장군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 자서전 대필가, 레스토랑 운영자, 전직 수학교사, 건달….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호숫가 펜션을 분양받아 모여든 이들은 또 다른 펜션의 주인이었던 장군 아버지를 잃은 딸 복희에게 '슬픈 복희'의 삶을 강요한다. 장군의 수많은 부하들을 펜션으로 몰려들게 하기 위한 장삿속이다. 딸을 지켜달라는 장군의 유언도 제멋대로 해석, 현충원 대신 펜션 근처에 모신다. 복희는 아버지의 부하들을 위해 날마다 묘지에 오른다.

'즐거운 복희'는 이야기의 속성을 까발리는 지점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진짜 복희'와 타인이 만들어 낸 '복희 이야기'가 뒤섞이며 실재와 허구, 선과 악의 경계와 정체성이 흐릿해진다. 인터넷 시대에 대한 은유다.

매일 아침 장군의 묘소에서 나팔을 불다가 복희와 사랑에 빠져 보트를 타고 호수룰 건너 도망치려다 사망한 나팔수의 죽음을 펜션주인들이 이용하는 대목은 섬뜩하다. 호수에서 복희를 잊지 못해 나팔수가 매일 밤 나팔을 분다는 전설을 펜션주인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퍼뜨린다. 이로 인해 밤 무대에서 나팔수가 없어졌음에도 펜션 마을은 손님들로 들끓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은유도 자연스럽다. 드라마터그를 맡은 김옥란씨에 따르면 '즐거운 복희'의 초고가 나온 건 지난해 9월이다. 남산예술센터 2014 공모작으로 그때까지 마감해야 했다.

세월호 사고를 예상할 수 없었던 시기임에도 연상이 가능한 건 작품 자체에 내재된 다양한 은유의 힘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바다에는 아직까지 '즐거운 복희'의 나팔수처럼 영혼들이 갇혀 있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근거도 없이 퍼진다. 좋은 작품은 이처럼 시대를 앞서가며 반영한다.

'즐거운 복희'의 또 다른 주인공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무대다. 호수가 극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자 모티브인데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의 원형무대는 최적이다. 관객들은 공연을 보는 내내 호수 주변에서 서성이며 등장인물의 행동과 심리를 낱낱이 파헤치는 경험을 한다.

'즐거운 복희'는 거장의 신작을 왜 기대해야 하는지를 증명한다. 은유와 상징으로 모든 상황을 아우르는 능력. 그것이 거장의 품격이자 정통 연극을 아직도 봐야 하는, 봐야만 하는 이유다.

연극 '봄날'에서 이 작가와 찰떡궁합을 과시한 연출가 이성열(52)씨가 두 번째로 그와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굿모닝 체홉' '디너'로 섬세함을 보여준 이 연출은 알레고리가 가득한 대본을 섬세한 손길로 매끈하면서 세세하게 다듬었다.

화가 역의 이인철, 백작 역의 이호성, 자서전 대필작가 박이도 역의 강일, 과거 레스토랑 주인 김봉민 역의 유병훈, 과거 수학교사 남진구 역의 박완규, 복희를 사랑하는 건달 조영욱 역의 박혁민, 복희 역의 전수지 등 대학로에서 내노라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두 말할 것도 없다.

21일까지 볼 수 있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의 2014 시즌 네 번째 프로그램이다. 이 연출이 이끄는 극단 백수광부가 공동제작한다. 1만8000~2만5000원. 남산예술센터. 02-758-2150

은유와 상징의 놀라운 적확성 ★★★★   SW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