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복대박]자갈치난장(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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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복대박]자갈치난장(56)
  • 시사주간
  • 승인 2017.07.0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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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길을 치마폭에 싸서 들어온다고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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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대박이 하동댁의 18번을 가락까지 깔면서 능청을 떨자 하동댁이 눈을 흘기며 마지못한 듯 술잔을 든다.입이 헤벌어진복대박이 기다렸다는 듯 술잔을 쨍!하고 부딪친다.

입술에 술잔을 달싹 댔다가 도로 내려놓는 하동댁… 눈살이 찌푸러지고 입술주름이 깊게 파인다.그 꼴을 훔쳐보던 복대박의 가슴이 얼음장처럼 서늘해진다.‘어머니도 이젠 많이 늙었구나.

내 욕심만 차리는 건가. 어머니가 하고 싶은대로 두는 게 옳은 건가. 아니야… 내가 빨리 돈을 많이 벌어 어머니 호강시켜 드리는 게 더 나은 길인 거야. 그리고 이젠 어머니도 고생 그만해야돼. 당신이 스스로 좋다고 하는 일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사실 난전바닥은 살벌한 곳이었다.

서로 잡아먹고 사는 생존의 현장인 것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머리채 잡고 싸우고 장꾼들 설레발에 정신이 왔다갔다 하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니었다.

사람 사는 동네 다 그렇다지만 여기만큼 아귀다툼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었다. 더군다나 고운 여자가 이곳에 발을 디딘다는 것은 고생길을 치마폭에 싸서 들어온다고 봐야 할 것이었다.“아이고 요새 며루치잡이가 지 철 만났겠네.
”하동댁이 뜬금없이 중얼거리더니 일어나서 포장을 대충 걷어 바다를 바라다본다. 새벽 바다는 까맣게 변해 멀리 정박한 배들에서 반짝이는불빛만이 무언가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었다.하동댁의 눈에는 그것이 섬진강을따라가는 남녘 들판에 파릇파릇하게 든 봄물처럼 느껴졌다.

그 봄기운을 따라 뭍의 끝에 이르면 하동과 남해 땅을 잇는 거대한 다리가 펼쳐진다. 남해대교다. 그 긴 다리가 생길 땐 정말 천지가 개벽하는 줄 알았다.

세상에 배를 타지 않으면 도무지 가 볼 엄두를 못내던 서상, 당항 심지어는섬의 끝자락인 미조까지 제집 드나들 듯 갈 수 있었으니 섬진강가를 따라다니며 재첩만 줍던 하동댁으로서는 드넓은 바다가 어머니 품속처럼 푸근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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