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신선이 돼버린 신라의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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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신선이 돼버린 신라의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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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2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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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풍류 탄생'.
▲ [시사주간=문화팀]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그 가르침을 베푼 근원은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는데, 실로 삼교(三敎)를 포함하여 중생을 교화한다.”

통일신라 말기 학자이자 문장가 최치원(857∼?)은 화랑 난랑을 위해 쓴 ‘난랑비 서문(鸞郎碑 序文)’에서 처음으로 풍류를 언급했다.

최치원은 토착신앙인 무(巫) 사상을 토대로 외래 사상인 유(儒)·불(佛)·선(仙) 삼교를 회통(會通)·융화(融化)해 풍류 사상을 처음으로 정립했다.

최치원은 12세(868) 때 동아시아의 중심인 당에 유학해 18세(874)에 외국인 최고성적으로 빈공과에 급제했다. 25세(881)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중국에서 문명을 날렸다. 28세(884)에 망해가는 신라를 구하고자 귀국, 38세(894)에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라는 사회개혁안을 제시했으나 실패했다. 42세(898)에 주유천하를 하면서 52세(909) 이후 신발만 남긴 채 가야산의 신선이 됐다고 전한다.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30일부터 9월14일까지 최치원이 정의한 풍류를 재해석한 ‘최치원-풍류 탄생’ 전을 연다.

최치원의 삶과 역사현장, 시문(詩文)을 재해석한 설치, 미디어, 서화 등 현대미술과 서예, 문인화, 현대무용, 타이포그래피 등 100여 점으로 꾸민다.

최치원 삶의 발자취를 따라 작가들이 모여 ‘풍류’를 이야기한다. 최치원이 천하를 다니면서 머물렀던 장소인 지리산과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암벽석각, 홍류동석벽제시와 박대성, 이갑철, 박병춘, 배병우, 이길우 등의 재해석이 소개된다. 또 토제소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희랑대사상, 진영, 영당 원작과 권창륜, 김종원, 서용선, 황재형의 재해석을 보여준다.

노상동, 문봉선, 박원규, 오윤석 등은 최치원의 문집인 ‘계원필경’을 비롯해 대표 시문인 ‘사산비명’ ‘추야우중’ 등을 재해석한 작품을 소개한다. 홍수엽의 현대무용과 최형주, 김무호, 허회태, 백승민의 필묵 공동작업도 볼 수 있다.

해인사 희랑대사상, 사산비명 탁본, 진영과 영당현판 및 지리산, 가야산의 암벽 석각 탁본 등 유물 50여 점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박생광의 작품도 있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부장은 “이번 전시는 최치원이라는 1100여 년 전 역사인물의 실존과 그가 처음 정의해낸 ‘풍류’라는 우리 인문 정신문화의 원형질을 예술로 시각화해내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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